늦여름에 난을 심었던 화분에다 고추 모종을 심었습니다.
처음에는 이파리가 시들시들해지면서
몇 번씩 물을 주어도
고추 모종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
뿌리 내리기가 쉽지 않은 듯 했습니다.
혹시 저대로 죽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뿌리를 내렸는지
고추 모종은 고개를 빳빳하게 들면서 잘 컸습니다.
과연 저 고추에 열매가 달릴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키가 쑥 자란 고추는
꽃망울을 맺고 하얀 꽃을 피워냈습니다.
손바닥만한 땅에 꽃잎을 떨군 고추는
못미더워 하던 고추열매을 맺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아는지 서너개의 열매를 맺었다가
이내 나머지 열매는 다 떨구고
달랑 한 개만을 가지에 남겨 놓았습니다.
새파랗던 열매는 손마디 크기 만큼만 컸고
더 이상 자라지 않아 귀엽기조차 했습니다.
시장통 큼지막한 고추와는 달리
앙증맞은 열매는 창문 틈 늦가을 볕에
지금, 볼거스럼하게 물을 들이고 있습니다.
어느날 고추 화분 옆에 국화 화분이 놓였습니다.
빨깧게 익어가는 고추는
진보라색 꽃망울을 터트린 국화를 바라봅니다.
수확의 계절, 가을을 알리는 국화도
빨간 열매가 매달린 고추를 바라봅니다.
그렇게 말없이 가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