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作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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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한 마리가 물 위로 솟구쳐 오르고 있습니다. 꽉 다문 입에 힘을 잔뜩 주어 두 눈이 튀어나올 듯합니다. 온몸으로 물살을 이겨 내느라 지느러미는 바짝 곤두섰습니다. 수평선 끝에서는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멋진 수염, 길고 날씬한 몸매, 가지런하고 굵은 비늘을 보니 이 물고기는 잉어가 틀림없습니다.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는 물 위로 튀어 오르는 잉어 그림입니다. 잉어 한 마리를 떠오르는 해와 함께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국 황하의 상류에 용문(龍門)이라는 급류가 있습니다. 우리말로 풀어 보면 ‘용이 지나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워낙 높은 곳에서 물이 떨어지므로, 물소리가 마치 천둥 소리 같습니다.
봄이 되면 하류에 있던 물고기들이 산란과 부화를 위해 상류로 올라오는데, 이 길목에서 그만 주춤거리게 됩니다. 떼를 지어 물을 거슬러 올라오던 수천 마리의 물고기들은 너무 커다란 난관 앞에서 어쩔 줄 모릅니다.
이 물고기들 중에서 힘이 세고 용감한 잉어들이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를 타고 오르기 시작합니다. 자칫 방심하면 돌부리에 이마를 찧고 쓰러지기 쉽습니다. 옛 기록에 따르면, 꼬리로 물살을 가르며 있는 힘을 다해 용문을 오르는 잉어는 한 해에 겨우 칠십 마리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용문에 오른 잉어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습니다. 여기서 ‘용문을 오른다.’라는 의미의 ‘등용문(登龍門)’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습니다. 바로 성공하기 위해 마침내 통과해야 하는 어려운 관문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공부하는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얻는 것을 ‘등용문’에 비유하였습니다. 여기서 잉어는 공부하는 사람이고, 용문을 지나는 일은 시험에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용이 된다는 의미는 곧 벼슬을 얻게 된다는 것을 뜻하지요. 붉은 아침 해는 어려운 난관을 뚫고 얻은 새 희망을 말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공부하는 데 힘쓴다면 어떤 어려운 관문도 뚫고 나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물고기 그림 하나에도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수험생들의 불안함은 다양한 합격 비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연도에 발행된 10원짜리 동전을 지니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고, 거울(시험을 잘 보라)이나 포크(잘 찍어라), 휴지(술술 잘 풀어라) 등이 수험생 선물 목록에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시험 볼 때까지 영화를 짝수 번 보면 안 된다는 ‘금기사항’도 있었습니다. 여학생이 쓰던 방석을 깔고 앉아 시험을 보면 점수가 잘 나온다는 미신에 남학생들이 여학생 방석을 훔치기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는 한 자동차의 엠블럼 중 ‘S’자를 갖고 있으면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아서 입시철만 되면 전국적으로 손상된 엠블럼을 새로 붙이려는 차들이 줄을 서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요즘은 분위기는 예전보다 잠잠한 편입니다. 학교에서 떡을 준비해 수험생들에게 나눠주고, 선물도 핫팩 무릎담요 전자시계 등 시험을 볼 때 필요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고 하는데, 수능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있는 가정에서는 수능 예비소집 후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를 보면서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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