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 전 부총리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이날 오전 3시 38분께 타계했다.
1928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 상과대 전문부를 졸업했고, 미국 UC버클리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68년 귀국해 서울대 교수로 강단에 섰고 20년 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조순 학파’로 불릴 만큼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17974년 케인즈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교과서인 ‘경제학원론’을 펴냈으며, 이 책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 전성인 홍익대 교수, 김영식 서울대 교수 등이 차례로 개정판에 공동 저자로 참여하면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제학의 대표적인 교과서로 꼽힌다.
고인은 육사 교관으로 있을 당시 제자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권유로 1988년에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으면서 경제 관료가 됐고, 1992년부터는 한국은행 총재로 임명됐으나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를 두고 정부와 갈등을 빚다가 1년만에 사표를 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진출, 1995년 민주당에 입당해 제 1회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됐으며, 길고 흰 눈썹과 대쪽 행보로 ‘서울 포청천’ 별명을 얻었고, 당시 아스팔트로 덮여있던 여의도 광장을 여의도공원으로 조성한 것은 대표적 업적이다.
서울시장 임기를 10개월 남짓 남겨두고 통합민주당 대선 후보로 영입돼 대권에 도전했다가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전격 단일화하면서 대선은 완주하지 못했지만, 대신 초대 한나라당 총재를 맡았고,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은 고인이 직접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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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강원 강릉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제15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 민주국민당 대표로 총선을 지휘했지만 선거 참패 후 정계에서 은퇴했다.
이후 서울대·명지대 명예교수와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등을 맡아 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6월 25일 오전이며 장지는 강릉 선영이다.